함께하는 삶

Q 아이의 약물치료 중단, 넓은 시야로 바라보기.

k woo 2024. 6. 2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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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이의 약물치료 중단, 넓은 시야로 바라보기.
 
Q: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2학기를 시작하면서, 복용하던 메디키넷20mg를 끊었습니다. 약 거부가 심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처리 속도와 주의력 부족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어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ADHD를 진단받았고 약물치료를 시작한 거였는데요. 약을 막상 끊고 나니까 다시 시작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단약하면 아이가 스스로 어려움을 못 견디고 다시 약물치료를 하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어요. 부작용이 없어지니 아이는 지금이 오히려 더 편하다고 하네요. 한시간 걸리는 숙제를 밤 늦게까지 붙잡고 있는데도 아이는 괜찮데요. 안타까워서 다시 약물치료를 했으면 좋겠는데 강제로 병원에 데려 갈수는 없으니 답답합니다. 사춘기가 돼서 부모를 ‘정신병약 먹인 사람’이라며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조심스럽습니다. 담당 선생님도 내버려 두고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하시네요. 엄마 입장에선 시간만 흐르는 것 같아 너무 답답합니다.
 
kwoo: 아이가 ADHD약을 먹을 때는 한 시간에 끝내던 숙제를 밤 늦게까지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하신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머님께서는 아이가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시겠지요. 하지만 혹시 아이의 지금 당장의 모습에만 너무 집중하는 건 아닐까요? 아이가 약을 거부하며 학습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재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앞으로도 계속 약물치료를 거부하며 경쟁에서 뒤쳐지고 과거를 후회하는 등의 힘들어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만약 그렇다면, 지나친 걱정으로 괴로워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미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기회와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인생은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결코 짧지 않습니다. ‘인생을 길게 보라’는 말은 쉽게 듣지만, 인생을 길게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전체 맥락을 읽는 힘이 약한 ADHD인이라면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ADHD인은 대체로 당장 눈앞의 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전체를 보지 못하고 문제에 매몰되곤 합니다. 마치 작은 웅덩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들어간다면, 주변이 온통 물 밖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초조함이 커지면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야는 점점 좁아집니다. 그러면 더욱 중요한 가치를 놓칠 수 있습니다. 지금 어머님께서도 아이의 학습 능력에만 지나친 집중으로 더 큰 걸 놓치고 있진 않은 지, 주어진 상황을 구석구석 돌아봐야 합니다.  
저 역시 ADHD인이자 부모로서 어머님의 답답함을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더욱이 ADHD인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이를 방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부단하게 응원하자는 의미입니다.
 
약물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이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단순히 학업의 성취를 높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기타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줄이면서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약물치료가 필요합니다. 지금 아이의 학습 능력에만 집중하는 건, 자칫 어머님과 아이 모두의 행복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물론 약물치료는 ADHD인의 삶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도구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ADHD치료의 전부가 아닙니다. 약물치료를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거나 학습 기능, 사회성 기능, 정서 조절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이 모두 향상되는 것도 아닙니다. ADHD를 진단받은 ADHD인들을 살펴보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이 제각기 다릅니다. 따라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에 맞는 치료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 긴 과정이 훗날 빛을 보려면, 어머님의 끊임없는 지지와 진심이 담긴 격려 등 아이가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초등학생이지만, 아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여 비전을 설정하고, 계획대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아이가 자주적인 어른으로 자랄 수 있게 격려하고 지지해주세요. 아이가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미래를 그리면서, 보다 넓은 시야로 아이를 바라봐야 합니다. 또한, 초등학교 4학년은 부모의 말을 순순히 따르기 보다,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스스로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오롯이 온다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따듯한 지지와 함께 가르쳐 주세요.
아이가 약물치료를 받길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아이에게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는 훗날 아이가 스스로 약물치료의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 현재 상황을 보면,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모습 등 오히려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아이의 행복을 바라신다면, 어머님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 애를 쓰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어머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아이가 당장 약물치료를 하지 않아도 일상을 유지하고, 더디게 진행되는 숙제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보여준 모습,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주적인 모습, 그리고 약물치료에 대해 진솔하게 소통하는 모녀 관계 등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점이 많습니다. 아이가 약물치료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상황 역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어머님의 마음에 여유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마음은 아이에게도 전달됩니다. 반대로, 불안함과 답답함으로 아이를 대한다면, 아이는 자신과 자신의 선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고 확신을 잃으며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아이를 믿고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어머님의 감정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세요.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특히 ADHD아이를 키운다는 건 더 힘든 여정입니다. 하지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처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들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지지를 주고받는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네이버 카페와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부모님들과 소통해 보세요. 특히, 지백이 커뮤니티 운영진 중 중등교사면서 최근 ADHD자녀교육 주제로 출간하신 작가 ‘이사비나’님이 운영하는 ADHD학부모 카카오톡 오픈채팅방도 추천합니다. 어려움을 공유하고 서로 지혜와 힘을 나누시 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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