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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행복했던 230708강연후기

k woo 2023. 7. 1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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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다 찍지 못했는데, 준비를 정성스럽게 해주셔서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나온 사진은 지백이 운영진 중 한 분께 따로 부탁드려서 찍은 사진입니다.

 

#1

강연의 마지막에 오신 분들께 숙제를 하나 내드렸습니다. 오늘의 강연을 듣고 느낀 감정에 대해서 가볍게 써본 뒤에 저의 이메일로 보내 달라는 것이었죠. 그러면 제가 그 내용을 하나로 모아서 저의 블로그에 업로드할 것이며, 이 과정은 모두에게 오늘의 기억을 더 지속하게 도와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존재하지 않는, 틀린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는 바람에 숙제의 수급이 잘 안됐습니다. ADHD인이 ADHD를 했네요...) 따라서 이 글은 제가 낸 숙제를 제가 하는, 두서없이 쓰는 강연 후기입니다.

 

 

#2

지백이 대화방이나 여러 ADHD 카페에서 강연 요청을 종종 받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기약 없이 미루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 저의 강연에 오셨던 ADHD 자녀 학부모 단체에서 강연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들이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에 제안을 수락했고, 모임 날 자녀들도 함께 보자고 말했습니다. 3주 뒤, 7 8일 토요일 정오로 약속했고, 저는 3주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약속된 장소로 간 저는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을 보니 저의 옛날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손으로는 드럼을 치는 연습을 하며 강연을 듣는 아이, 헤드폰을 목에 걸고 껌을 씹고 있는 아이, 엄마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잘 모르는 아이, 강연 도중 5분마다 한 번씩 손을 들고 저에게 질문을 하던 아이. 손에 고무줄을 장전하고 저를 겨누던 아이. 강연 도중에 화장실을 가거나 천장을 보며 멍을 때리는 아이 등. 저는 어린 시절, 더 했으면 더했지 부족하게 하진 않았던 아이였기 때문일까요? 제가 그런 ADHD인 이면서, 자녀가 있는 부모여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는 자신에게 조금 놀랐습니다.

 

 

#3

강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5 남자아이가 5분에 한 번씩 손을 들고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정해진 2시간 강연 시간에 맞춰서 분량을 준비했기 때문에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시간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저 역시 ADHD여서 그런지 질문에 대답하면, 스스로 어디까지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지요. 그렇게 한 아이의 계속된 질문에 대답하면서 강연을 진행하니 말이 꼬이고 이야기 순서도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바로 제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ADHD 아이는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시간 정도 진행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이 상황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들 귀중한 토요일 낮에 어렵게 시간을 내셨고, 멀리서 오신 분들도 계셨기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쉬는 시간을 5분 정도 가지자고 모두에게 말한 뒤, 아이가 강연의 진행을 끊지 않도록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 봤습니다.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던 내용 중의 몇 개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해도, 남이 저에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그건 행복하지 않은 거잖아요.”

“학교에서 가끔 과자 파티를 해요. 각자 준비한 과자를 뜯어서 서로 나눠 먹는 건데요. 친구들이 제가 뜯은 과자는 아무도 안 먹어요.”

“저랑 달리기 실력이 비슷한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랑 달리기 경주를 하거든요? 경주가 끝나면 그 친구한테만 다들 가서 축하해 줘요. 저한텐 아무도 안 와요.”

 

들으면서 굉장히 슬펐고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그 표정을 본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알았기 때문에, 아이의 말을 듣는 동안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강연 중에 계속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건 저와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굉장히 예민했는데, 모순되게도 그 마음 때문에 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결과 때문에 아이는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더 원하여, 자신의 그런 행동(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을 더 강화하는악순환에 있었습니다.

 

저는 ADHD 아이의 연속된 질문에도그냥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ADHD인이 아닌 대부분 사람은 저와 다르게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 당연했습니다. 따라서 아이 본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인지시켜 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강연을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가 다시 손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강연의 흐름과 관계가 없는, 단지 떠오르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아이에게 저는 질문을 했습니다.

 

: 오늘 제가 말하는 도중에 질문을 한 사람은 몇 명일까요?

아이: 한 명이요!

: 그게 누구일까요?

아이: 저요(멋쩍은 웃음).

: 학교에서 수업할 때도 선생님께 오늘처럼 손을 들고 질문을 하나요?

아이: . 그래요.

: 혹시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혼자예요?

아이: . 처음엔 그랬는데, 이젠 친구들도 저 따라서 질문 많이 해요.

: 오늘 혼자서 계속 손을 들었는데, 교실에서 친구들이나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궁금한 게 없어서 손을 들고 질문하지 않은 걸까요?

아이: 모르겠어요.

: 다른 친구들도 궁금한 게 있고 질문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모두가 그러면 수업의 진행이 어렵고 모두가 불편하게 되니까 그러지 않고 주변을 배려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사실 다 비슷해요. 배고프면 맛있는 게 먹고 싶고, 졸리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남들을 불편하게 하고 방해하면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볼까요? 좋게 보지는 않겠죠? 그러면 우리 친구는 왜 그렇게 다들 안 하는건데도 자꾸 손을 들고 질문하고 싶을까요?

아이: 잘 모르겠어요. 학교에서도 이렇게 잘못해서 혼났어요.

: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걸 참는 게 남들보다 어렵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리 친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엄마·아빠의 잘못도 아니고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주변에서 나에게 다가오려 하지 않아요. 내가 그런 의도로 한 행동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처럼 행동한다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을 겁니다. 계속 지금처럼 괴로운 채로 지낸다면 결국 불행해지겠죠. 따라서 달라지고 싶다면, 행복해지고 싶다면, 속에서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참을 수 있는 기능이 무럭무럭 자라서, 갑자기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마음처럼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건 연습하다 보면 될 수 있으니까, 지금은내가 참는 게 옳은 것 같아.’라는 생각만 인지하는 것만 해도 훌륭한 겁니다.

아이: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한번 참아보려고요.

 

그 뒤로 아이는 50분을 질문하지 않고 가만히 참았습니다. 눈을 감고 머리에 태블릿을 올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아이의 바른 자세에서, 비록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좌선하는 수행자의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를 보면서, ‘아이는 지금 자신의 본능을 참는 것이 이렇게 해야 할 정도로 아주 불편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는 주위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싶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사과가 왜 빨간색일까요? 무슨 어떤 이유와 우연이 겹치고 긴 세월 동안 누적되면서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그 과정이 어떤 역사적 의의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오늘에 와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과가 빨간색인 것이 사과의 잘못일까요? 아니겠지요. 그냥 사과는 빨간색이 되었고, 그렇게 된 것은 사과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ADHD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ADHD 인의 모습과 성향으로 인해 (내 의도와 관계없이) 오해를 만들고 남에게 상처와 불편함을 주고, 나 역시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향이 (원래 누구나 어려워하는) 인간관계를 조금 더 어렵게 만든다고 해서, 혼자 지내는 게 나는 더 행복하다며 관계 맺기를 포기하고 주변의 제안을 회피한다면 결국 우리는 고립되고 불행하게 됩니다. 따라서내가 ADHD인 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 자신을 상황과 맥락에 맞게끔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조절해야 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부모라면, ADHD 아이에게/성인 ADHD 인이라면, 자신에게) 인지시켜 줘야 합니다.

 

 

#5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교우관계를 물어봤을 때,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대답하면 곧이곧대로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ADHD 아이가 말하는 대로 믿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학창 시절 부모님께서 저에게 친구 관계에 관해서 물어보면 저는 항상 잘 지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학교폭력과 자퇴로 이어지는 상황이 온 것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주변과 잘 지내왔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떠오릅니다.

- 부모님과 소통을 해봐야 결국 내 잘못으로 귀결되며 잔소리로 이어진다는 것.

- 부모님을 굳이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것.

- 혼자서 그들과 친하다는 착각(실제로 그들은 나를따라다니는 아이정도로 생각)

등등

ADHD 아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또래 주변 무리에 무난하게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ADHD로 진단받았다면, 부모님들께서는 이러한 점을 알아 두셔야 합니다.

 

 

#6

부모는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네가 아직 몰라서 그래.” “너 이렇게 살면 나중에 정말 힘들어져. 모두가 너를 무시할 거야.” “세상에 믿을 사람 한 명 없어. 아무도 쉽게 믿지 마. 얕잡아 보이면 모두 널 이용하려고 할 거야.” 부모가 아이에게 세상에 대해서 무섭게 말하면 아이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어린 시절에 가진 세상에 대한 인식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취직을 준비할 때도, 취직해서도 등등 크고 작은 선택을 하는데 끊임없이 영향을 받습니다.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이고, 또래보다 항상 뭔가 여려 보이는 마음은 저도 부모이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는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래야만 합니다. ADHD 아이는 두려움과 불안이 커지면 제대로 마주 보지 않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아마 만나는 사람마다 의심부터 하게 된다면, 주변과 진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말을 해야 합니다. 아이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제대로 성장할 수 있고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받은 피드백 중 하나입니다.

“남다른 아이를 키우며 저도 불안했습니다.

아이가 불행해지고 사회의 불이익을 받는 자리에 가게 되지 않을까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더 많이 보여주고, 들려주고, 상기시키곤 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 그런 말들이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알게 되었습니다. 왜 아이가 방에서 한번 나오기도 힘들어했는지. 얼마나 두려웠을지..

아이를 지키려고 했던 말들이 되려 아이를 더 불안하고 도망가고 싶어지도록 만들지는 않았는지.

아이가 강우 작가님은 멋지다고, 그리고 지켜보신다 하셨으니 시험 잘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아이와 매일을 살아 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불안한 내일 때문에 걸음이 더딘 아이를 자꾸 책망만 하지 않도록. 감사합니다 ^^”

 

 

#7

강연에 참석했던 아이들이 자기 이름이 불리고 어른 대접을 받아서 좋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사실 ADHD 아이는 일상에서 자신이 존중받고 이해받는 상황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 아주 익숙합니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 안에 불쑥 생긴 충동성 등 때문이지요. 저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미리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연 날에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무슨 말이든 끝까지 듣고 존댓말로 차분하게 말해줬습니다.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ADHD 인으로서 이런 대우를 받는 ADHD 아이들의 기분이 어떨지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이렇게 대우받아야 합니다. 좋은 기분과 감정을 몸소 경험해 봐야 그 소중함을 알고, 그래야 밖에서도 자신을 조절하고 싶은 동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동기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8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자녀가 많을 거로 생각했는데,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쉬운 단어로 상냥하게 바꿔 말하려다 말이 꼬이고, 아이가 집중하고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주의가 흐트러진다 싶으면 이름 부르며 질문도 하는 등 저의 빈약한 주의력을 간신히 붙잡고 진행했습니다. 강연에 ADHD 아이들을 초대한 것은 처음인데요. 처음 해본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강연에서 많은 ADHD인을 직접 만나는 경험은 책을 쓰고 내는 시간만큼, 여러 ADHD 인에게 도움을 주며 저에게도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의 자녀들이 아직 아버지와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여러 요청에도 마음처럼 강연을 기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사정으로 내년 전반기, ‘지백이 2권 북 리뷰 이벤트 모임외에는 오프라인 만남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9

78일 토요일 강연 날 말한 것과 시간 관계상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미움받지 않으려면, 미워하지 않으려면. ADHD지피지기백전불태 제2권 관계편에 넣겠습니다.

 

 

#10

운영진 6명을 강연 장소에 초대해 주시고 강연을 위한 정성스러운 준비와 여러 편의를 제공해 주신 ADHD 학부모 단체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드립니다.

 

“살아가는 이상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이 있다. ADHD가 있든 없든, 당신은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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