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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히는 책을 내고 싶다면.

k woo 2023. 9. 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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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을 목표로 또는 고민하고 계시는 여러 ADHD인들께.

 

제가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 알아보면서 그리고 책을 출판하고 지금까지 혼자 느낀 점들입니다. 거기에 국문과를 졸업한 동생의 동기들이 출판업계나 작가로 꽤 있어서, 예전에 들은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넘버링을 했지만 이야기가 의식의 흐름대로 뒤죽박죽입니다. 다른 일들도 밀려 있어서 다시 정리해서 올릴 여력이 없네요. 저는 글을 자주 쓰지 않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며 출판사 관계자도 아니니,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로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간 조언 글을 올린다고 대화방에 약속한 과거의 내 머리를 뚝딱뚝딱하고 싶네요…).

 

하나의학사와 처음 통화를 하면서 제가 이런 주제를 이렇게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책을 쓰는 게 어떨지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즘 사실, 책이라는 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낼 수 있습니다. 사실 블로그에 글만 써도 그게 책이 되는 세상입니다.

자비출판이라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내가 쓴 글 그리고 소정의 자본만 있으면 책 한 권을 만들어서 서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마 오픈 카카오톡 지백이 채팅방에서 또는 브런치에서 또는 기타 블로그에서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말하는 분들은, 출간 그 자체에 목적을 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쓰는 책이 남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그 책이 어느 정도 수입을 가져오길 기대하는 마음이겠지요. 그런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 경험을 공유하는 목적인지 아니면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인지에 따라서 정보 수집과 레퍼런스 수준이 달라집니다. 후자라면 확실히 더 많은 자료와 최신 연구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만, 전자라면 자료 조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 마세요. 자칫 시간 낭비가 되거나 글의 목적이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

2. 나만의 경험을 적을 때: 나의 개인정보를 적을 때는 가족, 친척, 동료, 동기, 친구 등 모든 지인이 그 책을 읽을 것이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쓰세요. 가령, 본인이 경험한 어떤 사건을 하나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적을 때,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하거나 기분이 언짢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낸 후에 실제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합니다. 특히 ADHD를 드러내는 에세이를 쓸 때 유념합시다.

3.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는 글을 쓸 때: 인터넷, 유튜브 등으로 정보가 부족해서 뭔가를 못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해야 할 걸 알지만, 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최신 연구나 디테일한 정보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동요(감동)시키는 것입니다.

4. 요즘은 글보다 영상을 보는 시대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많은 분이 책을 들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요즘은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책의 라이벌은 다른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과 유튜브 영상들입니다.

5. 그럼에도 책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2022년 연간 도서 발행 종수는 8만 권이 좀 넘습니다. 365일간 매일 200권의 새로운 도서가 등록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스마트폰이 라이벌이 아니라고 해도 경쟁 도서 그 자체만으로 많이 빡빡합니다.

6. 국내 출판사의 수가 출간된 책 수만큼이나 많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출판사에서는 출판이 늘 밀려 있고 관계자들은 정말 365일 내내 바쁜 모습입니다. 모순이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출판 관계자들은 '요즘 출간할만한 책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수지타산에 맞는 글이 예전보다 없다는 뜻이겠지요.(시장 자본 규모와 흐름을 보면 당연합니다.)

7. 출판사에서 초고를 받아서 그 책을 서점에 올리기까지 수백~천만 원 이상의 돈을 들어갑니다. 모두 출판사에서 투자하는 것이지요. (자비출판의 경우라면 이 비용의 일부를 작가가 지불합니다. 그러면 출판 진입의 턱이 굉장히 낮아집니다. 그리고 판매부수 매출 일부(=인세)도 출판사를 통한 출판보다 더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출판사에서 초고를 보고 적어도 손해는 안 보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출간을 진행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 글이 잘 팔릴 것인지구체적인 플랜이 출간 계획서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락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PR을 잘해야 하지요.

8. 기획출간(출판사를 통한 출간)을 하고 싶다면 출간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작된 책이 많습니다. 저는 보지 않아서 특정 도서를 추천해 드릴 수는 없지만, 아마 내용이 다 비슷할 것 같으니 한 권 정도 정독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9. 위의 내용만 보면 인기 도서가 되는 건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드실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더 어렵습니다. 영화표의 상승으로 인해 생긴 극장가의 변화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예전 표 한 장에 9천 원 정도 할 때는 데이트를 하다가 시간에 맞는 영화를 골라서 봤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한 편에 거의 2만 원이 되면서, 두 명이 팝콘과 음료를 구매해서 본다면 5만원이 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영화 고르는 기준이 매우 깐깐해 졌습니다. 이견이 없을 유명한 감독이나 센세이션을 일으킨 대작들의 후속편을 우선 선택합니다. 그게 재밌는지 재미없는지를 떠나서 적어도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책도 예전에 비해서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대체제들(경쟁 도서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가능한 컨텐츠)이 많이 있습니다. 영화는 두 시간 보면 끝이지만, 책은 산다고 끝이 아니라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서 봐야 합니다. 그래서 망하지 않기 위한 선택, 돈 낭비가 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보면 이미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수십만, 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또는 학계 등에서 이미 저명한 사람들이 대부분 아니 어쩌면 전부입니다. 영화판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제품들이 승자로 오랫동안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매일 200권의 도서가 등록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세요. 한달이면 6천 권입니다. 여기엔 만화책, 문제집 등 여러 종류의 도서가 포함되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많습니다.)

10.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가 쓴 책이 잘 팔리기 원한다면, 차라리 먼저 유명해지는 것이 보다 확실한 방법입니다. 책 단 한 권으로 단번에 유명인사의 반열에 진입하는 일은 예전에는 가끔 있었지만, 이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운이 연속적으로 좋게 작용하는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책을 한권 냈는데 그 책이 어느 정도 팔렸고 각종 SNS로 자기 PR을 하다가, 그 책으로 강연을 다니고, 다시 책을 쓰고, SNS와 강연으로 자신을 알리는 과정을 반복되면 언젠가는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과정은 연속적인 운 좋은 상황을 가정한 겁니다. 현실은 기약도 없을 뿐더러 수입은 최저임금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은 장문의 명함이라고도 합니다. 처녀작의 인세로 돈을 벌 기대는 아예하지 마세요.) 저도 와이프의 경제활동이 아니었다면 책을 못 썼을 겁니다. 출간 후 현재 10쇄인 당신이 ADHD라고 해서, ADHD가 당신은 아니다. ADHD지피지기백전불태 제1의 인세는 현재 와이프의 수입이나 미래의 제 직업의 수입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아르바이트 수준입니다. 그리고 매일 200권씩 나오는 새로운 책의 물량 공세라면 곧 잊히게 되겠지요.

11. 책이 2만 원이라면 그 중에 약 2천 원 내외가 작가의 인세입니다. 그 외18,000원은 출판사가 다 가져가는 것도 아닙니다. 원자잿값과 서점(자릿세)이 대부분을 가져갑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서 굉장히 적습니다. 따라서 이미 저명하지 않은 사람이 책을 출간해서 그 인세로 생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작가에겐 투잡이 디폴트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책의 인세만으로 높은 수익을 내는 작가들은 책을 내지 않았더라도 생활을 유지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자신만의 커리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점으로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책을 냄으로써 더 많은 수입을 가져옵니다.

12. 작가에게 투잡이 나쁜 건 아닙니다. 다양하고 많은 경험이 있을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멋지고 세련된 어휘와 읽기 좋게 구성된 글이라 해서 모두 좋은 글은 아닙니다. 반대로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사용 범위가 빈약하고 가독성이 좀 떨어지는, 아마추어티(자기고백..)가 난다고 해도 좋은 글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알맹이입니다. 결국 내 책을 누군가 힘들게 번 돈을 지불하면서 살만한 가치가 있으려면 그만한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책이 아닌 꼭 이 책이어야 하는 이유를 적어도 프롤로그목차를 통해 느끼게 해줘야 구매로 이어집니다. 다른 책으로 대체될 수 없는 내가 쓴 글만의 경쟁력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써야 합니다. 처음에 방향을 잡는 것이 어렵지, 방향을 일단 잡으면, 실제로 타이핑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13. 결국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그 자체에 경쟁력이 있는 만큼 좋은 책을 만드는데 유리합니다. 내 과거에서 남들이 배울만하거나 알고 싶어할 만한 내용이 없는 것 같다면, 지금부터 그럴만한 커리어를 목표로 삶을 진행하면서 그 과정을 책에 담는 것도 한 방법이 됩니다. 그렇게 쌓아진 충실한 커리어가 따로 있고, 그것을 통해서 쌓인 수입으로 집필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훨씬 적은 시간으로 좋은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24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직접 집필하는 것보다 고스트 라이터(대필작가) 또는 첨삭 등을 이용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여러 방송에 나오거나 강연을 다니는 등 일상이 빠듯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나 저명한 교수, 전문직들이 쓴 많은 인기도서를 떠올려보세요.

14. 제가 쓰는 내용의 방향과 성격을 바탕으로 위의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실제로 많이 팔리는 책들을 잘 보면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등장인물과 인물 구성으로 비슷한 줄거리로 진행되는 여러 드라마를 생각해보세요. 흥행을 끄는 새로운 드라마가 늘 참신하고 이전에 없던 내용이라서 인기를 얻는 건 아닙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휴식차원으로 소비하는 책들도 많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쓰는 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맞춰서 남들이 읽고 싶어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현재 시장의 트렌드를 스스로 분석해보는 과정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위의 조언을 지키지 않아도 물론 많이 판매된 책들이 부지기수이며, 위의 조언을 지킨다고 해서 꼭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심해서 작성한 출간 제안서가 여러 출판사에 퇴짜를 당할 확률은 낮아질 겁니다. 출간한지 곧 1년이 되어갑니다. 겨우 한 권이지만, 운이 좋아서 교보문고 인기도서 평대에 여전히 올려져 있습니다. 너무 뜬구름 잡는 조언은 아닐 겁니다.

 

저도 그렇지만 ADHD인들은 자신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ADHD인이 말이 많다는 평가(e.g. “자기 말만 하네”)를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but, 관심사라면 할 일을 제치고 과몰입)과 모순되지만, ADHD인에게 출간의 욕구가 일반인에 비해서 조금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을 내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최소 몇 달간은 집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 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을 매일 3시간씩 서너 달은 써야 합니다. 이는 직장인이라면 퇴근 후 주어진 시간의 전부입니다. 결혼했거나 아이가 있다면, 글을 쓰는 시간에 해야 하는 집안 업무(청소, 설거지, 육아 등)의 부담이 배우자에게 고스란히 가게 됩니다. 그 과정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녹록지 않습니다. 나의 빈자리를 가족 구성원들이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피로와 불만이 보이지 않게 쌓입니다. 제가 위에 나열한 걸 다 읽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고 싶다는 분이 계시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 정도 열의는 있어야 책을 쓰더라도 좋은 책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쓰고 보니,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쓴 것 같네요. 책을 내는 그 자체가 매력적이라 그런지, 좋게만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저를 여러분에게 투영한 걸 수도 있겠습니다.) 이 글은 책을 내고자 하는 많은 분들의 의욕을 꺾고 꿈을 접게 만들려 쓴 글이 아닙니다. 내 꿈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내 마음의 동기가 진짜라면 어떤 의심에도 흔들림 없는 굳은 심지를 가질 수 있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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