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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단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k woo 2025. 4. 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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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이렇게 살 걸.”
“왜 그땐 몰랐을까.”
“그때 내가 이걸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들은 흔히, 어떤 책을 읽고 감명을 받거나 삶을 통째로 흔드는 경험을 한 뒤에 위와 같은 말을 한다. (나 역시 그랬었다)

후회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오해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단지 그날 그 순간에 어떤 말을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백이에서 강조했듯, 오늘날의 진정한 깨달음은 언제나 과거의 누적된 결과이다. 그 깨달음을 가능하게 한 것은 결국, 그 이전까지의 수많은 시간들이었다.

실수하고, 방황하고, 지쳐 쓰러졌던 바로 그 순간들.

“시간 낭비였다”고 쉽게 말해버리곤 했던 그 시기들이 없었다면, 그 깨달음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ADHD 진단을 예로 들어보자. 거의 대부분의 ADHD인들은 자신의 늦은 진단에 대해 후회한다.
“어렸을 때 진단받았더라면…”

그러나 진단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된 ‘지금의 나’는, 단지 진단이라는 정보를 받은 데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진단을 의미 있게 만든 것은, 진단 이전까지의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 이해받지 못한 채 반복해온 무기력의 시간들이다. 그 모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진단이 의미를 가진 것이다.

지나온 시간 속 어떤 순간이 무가치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그 모든 순간이 다 필연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깨달음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경험이 역치를 넘는 지점에서 발화되는 과정이다.

삶은 선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정적 한 순간의 사건으로 바뀌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누적된다. 우리의 의식은, 마치 수면 아래에서 밀도 높게 쌓여온 경험의 층이 일정한 무게를 넘어설 때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다. 통찰은 그렇게 찾아온다. 이 한 가지는 늘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당신의 지난날 중, 소중하지 않았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성찰도 없었다.
그 모든 방황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수용이란,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과거의 내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 인정에서 비롯되는 태도, 그것이 곧 삶을 통합하는 방식이며, 회복의 진짜 시작점이다.

(지백이2권에서 강조한 긍정주의에 대한 내용이 다시 기억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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