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공이산, 느리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
손흥민 선수가 유로파 리그 우승을 했다. 그 장면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우승의 순간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걸어온 시간과 그 끝에서 들었던 트로피의 무게가 달랐기 때문이다.
유럽 축구를 잘 모를 수도 있는 독자를 위해 짧게 설명하자면, 챔피언스 리그는 유럽 각 리그의 1위권 팀들이 경쟁하는 가장 상위 대회이고, 유로파 리그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이다.즉, 유로파 리그는 ‘1등 바로 아래 팀들의 리그’이며, 수준은 챔피언스 리그보다 낮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무대 중 하나다.
손흥민 선수가 17년간 몸담은 토트넘은 오랫동안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토트넘을 거쳐 갔지만, 대부분은 우승을 위해 더 큰 팀으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챔피언스 리그나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손흥민 역시 이적을 택할 수 있었지만, 남았다. 그리고 토트넘에서 17년 동안 뛰면서,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토트넘의 역사에 큰 휙을 그었다.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우직함'의 완성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결과를 먼저 따질 때, 그는 과정을 택했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는 대신, 그는 자기 자리에서 버티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결국, 산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며 나의 필명 ‘김강우’가 떠올랐다.
강(剛) – 강함
우(愚) – 어리석음
나는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의도적으로 愚(어리석을 우) 자를 필명에 넣었다.
‘우직하다’는 말의 ‘우’,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
‘바보 같다’고 여겨질 만큼 한 길을 걷는 집요함. 나는 그 어리석음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방식, 글을 써온 태도, 삶을 견뎌온 자세와도 일치한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너무 고지식한 거 아냐?”
“그렇게 비효율적인 길로 가면 손해 아니야?”
“더 똑똑하게 살아야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愚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愚는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 결과가 더디게 오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믿는 그 사람. 수많은 유혹과 조롱을 견디고도 방향을 틀지 않는 그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열자(列子)의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에는 한 노인이 매일 수레와 곡괭이를 들고 산을 깎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비웃는다.
“너 죽기 전에 그 산을 옮길 수는 있겠냐”고.
하지만 우공은 말한다.
“내가 못 하면 내 자손이, 그 자손이 이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옮길 수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고전의 교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건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ADHD인들에게 바로 이 우공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때로 빠르지 못하다. 즉각적으로 결과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오래 남을 수 있다.
결국 끝까지 갈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愚’라는 글자가 훈장처럼 따라붙는다.
"소신"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반복된 좌절과 성찰, 끝없는 질문과 고독한 선택의 시간들 위에, 소신은 천천히 형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신은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나의 중심’이 된다.
손흥민이 우승컵을 들던 그 순간, 나는 그가 가진 실력보다 그가 걸어온 시간과 태도에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오늘도 내 산을 깎고 있는가?"
"내 방향을 믿고, 흔들림 없이 가고 있는가?"
나는 조용히 대답한다.
"그렇다. 나는 지금도 산을 옮기고 있다. 愚공처럼. 김강우처럼."
202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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